1950년대 미국, 에스더는 유명 잡지사의 공모전에 당선되여 뉴욕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는다. 지방 도시에서 모범생으로 살던 에스더는 뉴욕에서 펼쳐질 “미국 전역의 수많은 여대생이 선망하는" 삶을 고대한다. 그러나 정작 뉴욕에서 마주한 것은 빛날 미래도, 보장된 커리어도 아니었다. 뉴욕에서 만난 화려한 사람들의 이면에는 과도한 소비 문화와 왜곡된 인간 관계 속에서 병든 채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모습이 보인다. 에스더는 처음으로 맞닥뜨린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머리에 종 모양의 유리관인 '벨 자'(Bell Jar)가 씌워져 자신을 숨쉬지 못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만 같다. 더는 화려한 삶을 좇는 친구들처럼, ‘모범적인 미국 여성’의 삶을 바라는 엄마처럼 의심 없이 전진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에스더의 내면에는 이제 깊은 고요만이 존재한다. 존재만으로 "문학사에서의 한 사건"이라 일컬어지는 실비아 플라스. 그가 유일하게 남긴 소설 <벨 자>는 고국인 미국에서는 그의 어머니의 반대로 1971년에야 출간될 수 있었지만 영국에서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젊은이들은 이 소설을 구해 함께 읽고, 공감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실비아 플라스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20세기 후반의 여성주의 그리고 여성운동에서 <벨 자>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고유명사로도 자리매김했다. 삶이 기차라면, 그곳에는 반드시 레일이 깔려 있을 것이다. 기차에 몸을 실은 그 누구도 목적지 이탈이나 탈선을 의심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기차는 언젠가, 목적지에 닿는다.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기실 우리는 우리네 삶도 그렇다고 여기곤 한다. 하물며 전쟁이 끝나고 냉전에 돌입한 1950년대에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명확했으리라. 그것이 돌연 희부옇게 보이는 순간, 일상의 곳곳에 생겨날 미세한 균열들을 실비아 플라스는 날카롭게 포착해 우리 앞에 조용히 펼친다. <벨 자>가 미국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실비아 플라스. 『벨 자』는 그녀가 남긴 단 한 권의 소설이다. 리커버 작업을 위해 찬찬히 살펴본 『벨 자』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살아가던 젊은 여성이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해낸 미세한 균열들로 가득했다. 안온해 보이지만 실은 불안 위에 떠 있는 사회를 감각하는, 한 여성의 자전적 이야기였다. 이번 리커버를 진행하며 이 소설만의 섬세한 문장과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심했다. 또한 출판사 마음산책의 20주년을 기념한 리커버라는 특징도 살려야 했다 + 더 보기 시인이자 소설가인 실비아 플라스. 『벨 자』는 그녀가 남긴 단 한 권의 소설이다. 리커버 작업을 위해 찬찬히 살펴본 『벨 자』는 1950년대 미국 사회를 살아가던 젊은 여성이 예민한 감수성으로 포착해낸 미세한 균열들로 가득했다. 안온해 보이지만 실은 불안 위에 떠 있는 사회를 감각하는, 한 여성의 자전적 이야기였다. 이번 리커버를 진행하며 이 소설만의 섬세한 문장과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심했다. 또한 출판사 마음산책의 20주년을 기념한 리커버라는 특징도 살려야 했다 리커버 표지는 제목이나 저자명이 확연히 보이는 것보다 이미지가 전적으로 보이는 방향을 택했다. 그만큼 이미지가 중요했기에 고심 끝에 미국에 거주 중인 이훤 시인의 사진을 사용했다. 푸르스름한 빛이 내려앉은 저녁, 붉은 빛이 새어나오는 커튼을 드리운 한 집의 창문에서 신비함과 모종의 불안이 함께 느껴졌다. 고요하면서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미지의 색감 대비를 디자인의 기본 방향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이미지 중심으로 리커버 디자인을 진행했기에 책등에 아무런 정보를 넣지 않았다. 대신 책등과 앞뒤로 조금씩 걸쳐져 있는 패턴은 유광박이라는 후가공으로 제작했고 무광의 사진 이미지와 조형적인 대비를 통해 리커버 디자인에 특별함을 더해주었다. (소설 속 주인공과 실비아 플라스에게 반짝임을 선물해주고 싶은 개인적인 마음도 담았다.) 재능 많은 문학가였던 실비아 플라스의 문장을 읽으며, 함께 한여름을 건너가기를 권하고 싶다. -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