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하고', '시한다'는 것, 김혜순 시론"
"첫눈 내린 날, 내시경 찍고 왔다. 그 다음 아무에게나 물어보았다. 너 내장 속에 불 켜본 적 있니? 한없이 질량이 나가는 어둠, 이것이 나의 본질이었나?" (<쥐 中>) 김혜순의 시를 읽고, 몸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서사 텍스트 속에 사로잡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시 그 자체인 여자를 나의 노래로 살려내는 상상'. '몸하고' '시하는' 것은 이렇듯 존재하지만 발화되지 않았던 것들을 발견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슬픔치약 거울크림>, <불쌍한 사랑 기계> 등의 시집을 통해 독창적 시 세계를 선보여온 시인 김혜순의 시론집. 서울예술대학에서 오랫동안 시를 가르쳐온 시인은 자신만의 독법으로 여성의 시를 말한다. 바리데기와 유하 부인의 이야기 같은, 버려지고 죽고 되살아나는 여자들의 이야기. 여성인 작가의 목소리의 남다름을 강은교,김승희, 최승자의 시와 오정희의 소설 등을 예로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몸과 유령, 히스테리란 단어만 들어도 넌더리가 난다'는 이에게 '자신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시선과 언어, 수치의 감옥이 더 더럽다는 것'을 말하는 데에서 여성, 시가 시작된다.
- 시 MD 김효선 (2017.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