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교양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을까요? 혹은 어떤 분야의 교양지식을 많이 쌓는 게 좋을까요? 정답은 없지만 필자의 경험상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양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서양 역사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서양 역사에 대해 다양하고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교양지식이 풍부한 사람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서양의 고대 역사부터 중세, 근세 그리고 현대에 이르는 너무도 방대한 분량의 역사를 다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필자도 옛날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서양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책을 읽어도 그때뿐, 조금만 지나면 어느 사건 하나 제대로 기억되는 게 없었습니다. 여러 사건들의 내용은 물론이고 그 시간 순서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필자의 과거의 어려움이 이 책을 쓰게 한 첫 번째 동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쓰면서 1장부터 마지막 장에 나오는 전쟁과 사건들이 연대순으로 되도록 기술했습니다. 독자들이 1장부터 12장까지 차분히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양사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전쟁과 사건들이 머릿속에 잘 정리될 것입니다. 그렇게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기억할 수만 있다면 서양 역사에 대한 교양지식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서양 역사에서 수없이 일어났던 그 많은 사건들을 어떤 기준으로 살펴보는 게 좋을까요? 이런 소소한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필자가 이 책을 집필한 두 번째 동기입니다. 방대한 서양 역사를 조금씩 정리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하고 그래서 필자가 선택한 것은 정말 중요한 전쟁과 전투인데 그 이유는 전쟁만큼 드라마틱한 역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가 강대국이 되기도 하고 혹은 몰락하기도 하는데 그런 과정의 대부분이 전쟁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야말로 가장 드라마틱하고 위대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교양지식을 익히고 배우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방법은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그림을 통해서 서양사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림을 통해서 역사와 전쟁을 살펴보는 것은 유명한 그림에 대한 교양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그런 그림이 보여주는 다양한 역사까지 알 수 있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동안은 오페라와 서양 연극 그리고 다문화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번에는 그림, 그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명화’라고 부르는 일명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그림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좋은 오페라나 뮤지컬, 영화, 조각도 그렇지만 좋은 그림 한 점만큼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도구도 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명작의 반열에 들어갈 만큼 유명한 그림들은 정말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흔히‘ 보는 만큼 아는 것이 아니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림이야말로 정말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는 가장 대표적인 소재일 것입니다.
1991년 10월 첫째 주에 느꼈던 두 번의 벅찬 감정을 저는 평생 기억하는데, 이날이 바로 제가 태어나서 처음 유럽행 비행기를 타본 날이었습니다. 친구 한 명을 설득해서 함께 두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 날이었는데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때라 함께 출발한 일행들 모두 감격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럽행 비행기가 이륙할 때 느꼈던 벅찬 감정이 첫 번째였다면, 두 번째 벅찬 감정은 파리에서 느꼈던 감정입니다. 루브르박물관, 특히 프랑스어를 배웠던 제게 파리와 루브르박물관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먼저는 박물관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됐고, 다음에는 그동안 중·고교 미술 교과서에서만 보던 엄청난 그림들이 다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유명한 그림들이 당시에는 제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게 그 유명한 그림들은 단지 인증샷을 위한 멋진 그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유명한 그림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까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런 명화들에 대한 아무런 인문학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느라 제목과 화가의 이름은 외웠지만, 단지 그게 다였기 때문에 명화가 전혀 명화 역할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에서 공부를 하면서 루브르박물관을 자주 다니게 되었고 명화를 보는 눈과 지식을 아주 조금씩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는 명화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었던 저의 젊은 날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도약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명화에 대한 아무런 인문학적 지식 없이 그저 가이드의 설명에만 의존했던 저의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조금의 지식을 쌓은 지금 보는 그림들은 분명 똑같은 그림들이지만 그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다릅니다. 아무런 지식 없이 그냥 본 그림들이 단지 인증샷을 위한 하나의 멋진 그림이었다면, 인문학적 지식을 갖고 바라보는 그림들은 비로소 ‘명화’가 되어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부족하지만 이 책이 ‘명화’를 단지 하나의 그림이 아니고 진정한 ‘명화’로 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된다면 너무도 감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젊은 시절 제가 겪었던 그런 실수(명화를 그냥 인증샷을 위한 그림으로 보는)들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기술했고, 하나의 명화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넣으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그림들은 서양미술에 속하는데 이 책에서 중요시한 것은 미술이 아니고 서양에 관한 부분입니다. 미술에 방점을 둔다면 다양한 화가의 기법이나 색조, 사조 등에 관한 설명이 많겠지만 이 책에서는 서양에 방점을 두었기 때문에 명화와 그런 명화를 만든 화가와 관련된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들을 썼습니다. 어떤 명화가 나오게 된 데는 반드시 그 시대와 관련된 중요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대가 유명한 작품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는 거겠죠.
문학도 철학도 역사도 혹은 회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도 모두 시대의 산물입니다. 또한 세상 모든 것들은 다 연결되어 있어서 정치, 사회, 문화, 역사, 사상, 미술 등은 모두 그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하는 하나의 도구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프랑스의 유명 화가였던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이나 밀레의 <만종>등은 단지 멋진 그림이 아닌 것입니다. 그 그림 속에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그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던 화가의 역사와 삶, 정치, 사상 등이 모두 녹아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그런 그림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 자체 의미는 물론이고 그런 그림이 나오게 된 다양한 역사와 의미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그런 명화가 왜 그렇게 유명해진 것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아는 유명한 그림들은 비로소 명화가 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이 책은 미술만 따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철학, 사상, 문화, 신화 등 인문학과 관련된 전반적인 모든 것들을 가지고 명화를 바라봅니다.
또 한 가지, 이 책에 나오는 명화들은 제가 지방의 국립대에서 ‘프랑스 문화와 예술’이라는 과목으로 전공선택 과목을 강의할 때 선택했었던 그림들이기도 합니다. 당시 함께 수업을 했었던 학생들이 명화들을 보면서 보여주었던 열정적인 토론과 좋은 반응들이 이 책을 쓰게 만든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당시 학생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 책머리에 중에서
흔히 ‘오페라’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남녀 주인공들의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와 그들이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맞는 말이다. 오페라에서는 주인공들이 부르는 음악(아리아, 레치타티보)이 매우 중요하고 거의 모든 오페라 작품 속에는 아름다운 사랑이나 이별의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이해하고 가수들을 잘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페라를 대할 때 음악 위주로 듣는다거나 사랑이나 이별, 죽음 등의 이야기로만 본다는 것은 조금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대다수 젊은이들, 특히 필자가 매일 상대하는 대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오페라를 그처럼 사랑과 이별, 죽음과 연관된 이야기로만 많이들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일반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종류의 오페라 관련 책들이 대부분 음악가의 생애나 작품 줄거리 위주의 소개, 혹은 주인공 가수나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음악이 들어 있는 음반을 소개하는 책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일반 사람들이 오페라를 그런 시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에 비해 최근 나오는 오페라 관련 책들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고 다양한 시각에서 작품을 다루는 좋은 책들이 너무도 많다. 그럼에도 조금 아쉬운 것이 바로 하나의 오페라 작품에 대한 다양한 배경에 대한 설명을 다룬 책들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필자가 아쉬워하던 부분이고 그런 생각이 『오페라, 역사를 노래하다』라는 책을 새롭게 내게 만든 이유다.
이 책은 약 5년 전에 세상에 내놓은 『오페라로 배우는 역사와 문화』를 기본으로 새로운 내용과 사진을 추가해서 개정증보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제1장에서는 오페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설명을 하고, 제2장부터는 한국을 비롯해서 서구에서 가장 빈번하게 공연되고 많은 대중들에게 친숙한 작품 열 편을 골라서 작품 자체에 대한 내용은 물론 그 작품이 갖는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을 다루었다. 음악은 물론 당대의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데 그 이유는 오페라는 매우 정치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음악이나 미술을 포함한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배경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장르를 꼽으라고 한다면 연극과 더불어 오페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음악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가장 잘 내포하고 보여주는 것이 오페라이기 때문에 오페라 작품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안다는 것은 그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매우 필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현대 오페라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모차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만 해도 아름답고 감미로운 연애 이야기로 많이 보지만 실상 이 작품은 당대 지배층이었던 왕족과 귀족계급에 대항하는 힘없는 서민 계층의 자그마한 반항 내지는 투쟁을 그린 일종의 반체제 작품이었다. 그랬기에 3년 동안 다섯 번의 수정을 거쳤음에도 정부에 의해 공연 허가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일반 서민계급이 지배계급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 것이 결국 3년 후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오페라는 단순한 음악을 통한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가장 대중적인 열 편의 작품을 통해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 역사적 배경 그리고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루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이 이 책이 다른 오페라 책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단순히 유명한 오페라를 소개하고 평가하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오페라라는 창문을 통해 당대 서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대적 흐름과 더불어 그 시대의 가치관과 사상까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되길 바란다.
오페라를 관람한다는 것은 영화 감상이나 음악, 미술 감상에 비해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많은 정치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고 보지 않거나 단지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에 치중한다면 본전 생각이 간절할 수밖에 없는 장르이다. 그렇기에 바라기는 이 책을 통해 오페라에 대한 친근함은 물론이고 당대 서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 대한 흥미가 생길 수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