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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장강명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75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소설가

기타: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졸업

최근작
2024년 11월 <킬러 문항 킬러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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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제가 소설을 쓰는 첫번째 이유가 돈인 것은 아닙니다. 세번째 이유쯤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번째 이유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첫번째, 두번째 전장을 가벼이 여긴다는 의미가 아님을 잘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계속 싸워서 글과 돈을 열심히 벌어보겠습니다. 쓰고 싶은 소설을 다 써서 더이상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겠습니다. - 수상소감

다행히 졸업

『다행히 졸업』 소설집의 제안을 받은 뒤 고교생 네 명을 인터뷰하고,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어떤 것들은 너무 그대로라서 좀, 오싹했다.

당선, 합격, 계급

“나는 정말로 할 말이 많았다. 우선 문학공모전의 기원과 선발 메커니즘, 영향력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나의 뿌리와 위치를 찾는 일이기도 했다. 공채제도에 대해서도 같은 지점들을 살펴보고 싶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 역시 나의 뿌리와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또 나는 문학공모전을 준비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몇 가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 오해하는 것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몇 년 전까지 그런 정보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대해 몇 가지 제언도 하고 싶었다. 공모전과 공채제도의 부작용이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지, 두 제도의 순기능을 유지하면서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건지에 대해 취재 과정에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STS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탐구하는 학문 분야다. 과학기술은 이제 여러 영역에서 실존적 위기를 일으키고 있고, 나는 문학이 여기에 대응해야 하며,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우리는 아주 깊은 차원에서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즉, 우리는 기술로 인해 ‘변질’된다. 그 변질을 포착하는 것이 STS SF의 목표다.

산 자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는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을 단순히 전시하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현장이 빚어졌는지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집니다.

재수사 1

이 소설을 쓸 때 두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째, 현실적인 경찰 소설을 쓰자. 한국 형사들이 수사하는 과정을, 과장된 액션이나 초능력같은 도구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보자. 둘째, 2022년 한국 사회의 풍경을 담고, 그 기원을 쫓아보자. (……) 2020년대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를 두 단어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저는 ‘공허’와 ‘불안’을 꼽겠습니다. 저는 그 공허와 불안의 기원이 이 사회의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설계된 사회에서는 누구도 공허와 불안의 함정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수사 2

이 소설을 쓸 때 두 가지 목표가 있었습니다. 첫째, 현실적인 경찰 소설을 쓰자. 한국 형사들이 수사하는 과정을, 과장된 액션이나 초능력같은 도구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보자. 둘째, 2022년 한국 사회의 풍경을 담고, 그 기원을 쫓아보자. (……) 2020년대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를 두 단어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저는 ‘공허’와 ‘불안’을 꼽겠습니다. 저는 그 공허와 불안의 기원이 이 사회의 시스템에 내재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설계된 사회에서는 누구도 공허와 불안의 함정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정시에 복용하십시오〉 약도 사람도, 제때가 있다 생각합니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역사학자인 린 헌트는 18세기 유럽에서 서간체 소설이 유행한 것이 사람들의 공감 능력을 키웠고, 이것이 인도주의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서간체 소설이 인도주의 혁명을 이끌었다면, 소설보다 더 깊이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거기에 공감하게 만드는 기계가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가 그런 기계를 만들고 싶어 할까? 타인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악인의 내면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가 이 작품을 쓰게 됐습니다. 사회에 도움이 될 거라며 등장하는 과학기술 중 상당수가 그 적용 대상인 인간을 너무 단순한 존재로 가정합니다. 그런 기술은 사람들의 행동과 의식에 예기치 않은, 때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이 책에 실은 글 절반 정도가 그런 주제를 다룹니다. 제목은 당연히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가져왔습니다. ‘예루살렘’처럼 이응으로 시작하고 한국어로 네 음절인 적당한 지명을 찾다 보니 알래스카가 떠올랐습니다. 마침 휴고상 수상작인 마이클 셰이본의 《유대인 경찰연합》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알래스카에 유대인 정착촌이 세워진 평행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 영향도 받았습니다. 《유대인 경찰연합》에서는 앵커리지가 아니라 싯카가 주 무대이고, 유대인들이 훨씬 더 힘겨운 처지에 처해 있습니다. 아이히만 외에도 아인슈타인, 존 F. 케네디, 다비드 벤구리온, 골다 메이어, 로잘린드 프랭클린, 앤 모리시 메릭처럼 실존 인물들의 이름도 사용했습니다. 소설적 이용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이 엽편의 제목은 스튜디오봄봄의 김희라 이사님이 지어주셨습니다. 〈당신은 뜨거운 별에〉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을 침해당한 여성과 잠재력을 펼칠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이 연대해서 억압에 맞서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입니다.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대니얼 데닛이 몸과 뇌를 분리하는 상황에 대해 콩트를 쓴 적이 있는데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콩트는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이런, 이게 바로 나야!》에 실려 있습니다. 쓰면서 어릴 때 읽었던 레이먼드 존스의 소설 《사이버네틱 브레인즈》도 생각났습니다. 이 소설은 《합성 뇌의 반란》이라는 제목의 아동용 SF로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아이디어회관 SF 세계명작 시리즈의 12번째 책이었습니다. 〈센서스 코무니스〉 일본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일반의지 2.0》에서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을 과학기술로 업그레이드한 ‘일반의지 2.0’이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를 제안합니다. 작동하지 않는 공론장이라는 개념에 매달리기보다 정보기술로 시민의 무의식을 읽어 이를 정치에 활용하자는 대담한 발상인데, 제게는 무척 위험하게 들렸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바탕이 되어 쓰게 된 소설입니다. 내용은 당연히 허구입니다. 특정 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2016년에 잡지에 발표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아스타틴〉 인간 정체성의 핵심이 필립 K. 딕의 소설이나 그 영향을 받은 다른 창작물에서처럼 과연 기억에 있는 걸까 싶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쌓아온 기억과 물려받은 유전정보만으로 이 순간의 내가 규정되는 걸까요. SF 세계관 속에서 벌어지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점에서 스티븐 킹의 《런닝 맨》, 타카미 코슌의 《배틀 로얄》,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계장치를 통한 부활은 로버트 셰클리의 《불사판매 주식회사》에서, 부활과 환생이 사회 시스템으로 발전한 세계는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에서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마지막 두 문장, ‘멀리에 별들이 있다. 나는 공허를 헤치고 나아간다.’는 알프레드 베스터의 소설 《타이거! 타이거!》의 또 다른 제목인 ‘The Stars My Destination’을 제 나름대로 오마주해본 것입니다. 각 챕터 앞부분에서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대사들을 인용했는데, 펭귄클래식코리아 번역본을 따랐습니다. 《오셀로》는 강석주 번역가, 《햄릿》은 노승희 번역가, 《맥베스》는 김강 번역가, 《리어 왕》은 김태원 번역가가 옮겼습니다. 〈여신을 사랑한다는 것〉 온라인게임의 NPC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하다 나온 글입니다. 〈알골〉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극장에서 크리스토퍼 리브와 진 해크먼이 나오는 《슈퍼맨 2》 영화를 봤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부하 두 사람과 함께 슈퍼맨을 괴롭히는 조드 장군이 멋있었습니다. 이후로 슈퍼히어로 영화를 볼 때마다 늘 궁금히 여겼던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왜 초능력이 있는 악당들이 몰려다닐까, 그냥 그 능력으로 혼자 편하게 살면 될 텐데’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이 글의 설정이 되었습니다. 쓰면서 역시 어릴 때 감명 깊게 봤던 1950년대의 걸작 SF 영화 《금단의 별》도 떠올렸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SF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템페스트》를 인용하고 싶었습니다.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개고하면서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를 되풀이해서 들었습니다. 〈데이터 시대의 사랑〉 ‘테크놀로지와 인문’ 연속 강연에서 빅데이터를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전후로 이 문제에 관심이 생겨 관련 교양서를 몇 권 읽었습니다. 스티븐 베이커의 《빅데이터로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 야노 가즈오의 《데이터의 보이지 않는 손》, 캐시 오닐의 《대량살상수학무기》, 에릭 시겔의 《빅데이터의 다음 단계는 예측 분석이다》, 박형준의 《빅데이터 전쟁》 등입니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저 나름대로 보탠 생각이 이 소설로 이어졌습니다. ‘행복은 가속도 센서로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야노 가즈오 히타치 중앙연구소장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가즈오 소장은 이미 손목에 차는 밴드형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해 여러 가지 휴먼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글의 제목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가져왔습니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동네책방 에디션)

〈정시에 복용하십시오〉 약도 사람도, 제때가 있다 생각합니다.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역사학자인 린 헌트는 18세기 유럽에서 서간체 소설이 유행한 것이 사람들의 공감 능력을 키웠고, 이것이 인도주의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서간체 소설이 인도주의 혁명을 이끌었다면, 소설보다 더 깊이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거기에 공감하게 만드는 기계가 나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가 그런 기계를 만들고 싶어 할까? 타인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악인의 내면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가 이 작품을 쓰게 됐습니다. 사회에 도움이 될 거라며 등장하는 과학기술 중 상당수가 그 적용 대상인 인간을 너무 단순한 존재로 가정합니다. 그런 기술은 사람들의 행동과 의식에 예기치 않은, 때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이 책에 실은 글 절반 정도가 그런 주제를 다룹니다. 제목은 당연히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가져왔습니다. ‘예루살렘’처럼 이응으로 시작하고 한국어로 네 음절인 적당한 지명을 찾다 보니 알래스카가 떠올랐습니다. 마침 휴고상 수상작인 마이클 셰이본의 《유대인 경찰연합》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알래스카에 유대인 정착촌이 세워진 평행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 영향도 받았습니다. 《유대인 경찰연합》에서는 앵커리지가 아니라 싯카가 주 무대이고, 유대인들이 훨씬 더 힘겨운 처지에 처해 있습니다. 아이히만 외에도 아인슈타인, 존 F. 케네디, 다비드 벤구리온, 골다 메이어, 로잘린드 프랭클린, 앤 모리시 메릭처럼 실존 인물들의 이름도 사용했습니다. 소설적 이용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이 엽편의 제목은 스튜디오봄봄의 김희라 이사님이 지어주셨습니다. 〈당신은 뜨거운 별에〉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을 침해당한 여성과 잠재력을 펼칠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이 연대해서 억압에 맞서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이야기입니다.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대니얼 데닛이 몸과 뇌를 분리하는 상황에 대해 콩트를 쓴 적이 있는데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콩트는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온 《이런, 이게 바로 나야!》에 실려 있습니다. 쓰면서 어릴 때 읽었던 레이먼드 존스의 소설 《사이버네틱 브레인즈》도 생각났습니다. 이 소설은 《합성 뇌의 반란》이라는 제목의 아동용 SF로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아이디어회관 SF 세계명작 시리즈의 12번째 책이었습니다. 〈센서스 코무니스〉 일본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일반의지 2.0》에서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을 과학기술로 업그레이드한 ‘일반의지 2.0’이라는 새로운 정치 형태를 제안합니다. 작동하지 않는 공론장이라는 개념에 매달리기보다 정보기술로 시민의 무의식을 읽어 이를 정치에 활용하자는 대담한 발상인데, 제게는 무척 위험하게 들렸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바탕이 되어 쓰게 된 소설입니다. 내용은 당연히 허구입니다. 특정 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2016년에 잡지에 발표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아스타틴〉 인간 정체성의 핵심이 필립 K. 딕의 소설이나 그 영향을 받은 다른 창작물에서처럼 과연 기억에 있는 걸까 싶은 의문이 있었습니다. 여태까지 쌓아온 기억과 물려받은 유전정보만으로 이 순간의 내가 규정되는 걸까요. SF 세계관 속에서 벌어지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점에서 스티븐 킹의 《런닝 맨》, 타카미 코슌의 《배틀 로얄》,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계장치를 통한 부활은 로버트 셰클리의 《불사판매 주식회사》에서, 부활과 환생이 사회 시스템으로 발전한 세계는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에서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마지막 두 문장, ‘멀리에 별들이 있다. 나는 공허를 헤치고 나아간다.’는 알프레드 베스터의 소설 《타이거! 타이거!》의 또 다른 제목인 ‘The Stars My Destination’을 제 나름대로 오마주해본 것입니다. 각 챕터 앞부분에서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대사들을 인용했는데, 펭귄클래식코리아 번역본을 따랐습니다. 《오셀로》는 강석주 번역가, 《햄릿》은 노승희 번역가, 《맥베스》는 김강 번역가, 《리어 왕》은 김태원 번역가가 옮겼습니다. 〈여신을 사랑한다는 것〉 온라인게임의 NPC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하다 나온 글입니다. 〈알골〉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극장에서 크리스토퍼 리브와 진 해크먼이 나오는 《슈퍼맨 2》 영화를 봤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부하 두 사람과 함께 슈퍼맨을 괴롭히는 조드 장군이 멋있었습니다. 이후로 슈퍼히어로 영화를 볼 때마다 늘 궁금히 여겼던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왜 초능력이 있는 악당들이 몰려다닐까, 그냥 그 능력으로 혼자 편하게 살면 될 텐데’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이 글의 설정이 되었습니다. 쓰면서 역시 어릴 때 감명 깊게 봤던 1950년대의 걸작 SF 영화 《금단의 별》도 떠올렸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SF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템페스트》를 인용하고 싶었습니다.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개고하면서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를 되풀이해서 들었습니다. 〈데이터 시대의 사랑〉 ‘테크놀로지와 인문’ 연속 강연에서 빅데이터를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전후로 이 문제에 관심이 생겨 관련 교양서를 몇 권 읽었습니다. 스티븐 베이커의 《빅데이터로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 야노 가즈오의 《데이터의 보이지 않는 손》, 캐시 오닐의 《대량살상수학무기》, 에릭 시겔의 《빅데이터의 다음 단계는 예측 분석이다》, 박형준의 《빅데이터 전쟁》 등입니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저 나름대로 보탠 생각이 이 소설로 이어졌습니다. ‘행복은 가속도 센서로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야노 가즈오 히타치 중앙연구소장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가즈오 소장은 이미 손목에 차는 밴드형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해 여러 가지 휴먼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고 합니다. 글의 제목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가져왔습니다.

표백

나는 지금의 20대에게는 ‘언젠가는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허락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글감으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 정말 그런 희망이 허락되지 않은 걸까? 이 소설에서 세연이 펼치는 주장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책이 다루는 가능성은 20대를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모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사실에 나는 약간 죄책감을 느낀다. 이것도 일종의 착취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위대한 과업이란 철저히 개인화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위대하다는 개념이 변질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위대함의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고, 스토리텔링 기법으로만 묘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20대가 스스로 자신의 과업을 찾아주길 바란다. 내게 20대는 여러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과업을 찾는 일이 바로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길이다. 이 책에서도 인용한 새뮤얼 헌팅턴의 말처럼, 사람은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20대를 정의하는 각종 담론이 대체로 공허한 이유는 그 청년세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과업을 찾는 것이 바로 지금의 20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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