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는 폴란드영화학교 학생일 때, 그리고 정부의 후원 아래 작업하던 감독 시절부터 아주 적은 재원만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훈련된 배우, 핸드헬드 카메라 등 단지 몇 개의 요소만 사용하는 것이다.
폴란스키의 개인적인 관심사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배경에서 나왔다. 사회주의 국가의 공식적 영화학교 로츠에서 그는 재능있는 예비 영화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의 첫 영화 [물 속의 칼]은 공산당의 분노를 샀고, 폴란드 삶에 대해 부정적 측면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1964년 당의회에서 고발조치됐다. 이데올로기적 상황보다는 개인적 욕망을 앞세우고 다양한 실험 방식을 취한 [물속의 칼]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그를 진정한 국제적 감독으로 부상시켰다.
폴란스키는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하고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서 프랑스로, 영국으로, 이탈리아로, 미국으로 옮겨다녔다. 그의 관심은 사회적.정치적 강제를 해부하려는 것보다도 인간 삶의 개인적 압박감, 무의식적 충동, 그리고 정신병들에 대한 거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물 속의 칼] 뿐만 아니라 [혐오], [막다른 골목], [악마의 씨], [세입자], [테스] 등은 모두 '고립'이라는 지리적 형태를 갖췄고, 그것은 종종 의심과 공포와 욕망과 심지어 광기까지 나오게 하는 마음의 지리학으로 변형된다.
로만 폴란스키는 한 피아니스트의 삶을 중심으로 유태인 학살을 다룬 영화 [피아니스트]로 2002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