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첫 문장을 여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한번 열린 문장들은 막힘없이 술술 써졌다.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지척의 광장에서 울려오는 함성 소리에 아랑곳없이 혼자 사무실에 남아 소설을 썼던 시절이었다.
문단에 이름을 올리고 나서는 접하는 모든 것이 소설감으로 보였다. 흔히들 말하는 ‘그분이 오신 날’이 종종 찾아와, 그런 날은 밤새워 소설 한 편을 뚝딱 써내곤 했다. 원고 청탁이 없어도 제법 성실하게 소설을 썼다. 그 시절에는 소설가를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 올리는 연출가라고 생각했다.
첫 소설집을 냈을 때, 소설이 너무 쉽게 잘 읽히는 거 아닌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읽은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내 소설이 어렵다니, 참 이해가 안 되는군. 지인들을 만나면 나는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내 소설이 쉽지는 않다고 했다.
드문드문 소설을 발표하고 언제부턴가 나는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다. 어떤 것은 내 스스로 ‘중지’라는 판결을 내렸고, 어떤 것은 첫 단락을 넘기지 못했으며, 또 다른 것은 분량은 넘치는데 하나로 꿰지 못했다. 소설을 쓰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여러 이유들을 생각해보았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이야. 눈치를 보고 있는 거지. 이제야 소설이 뭔지 알게 된 거야 등등 자타가 내리는 흔한 위로 같은 결론을 곱씹는 동안 세월은 어김없이 지나갔다.
두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겨우, 간신히, 다행히,라는 수식을 붙여야 마땅할 소설집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건 첫 소설집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분에 넘치는 걱정을 한다. 누구든 책을 내는 건 어렵지 않다고 말하지만, 정작 작가가 책을 내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현실이라는 말에 손이 멈춘다. 어쩌면 삭제 키를 눌러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이 소설집에 대한 변명이, 우리는 어떻게든 연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고백하건대, 이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그나마 덜 부끄러울 것 같다.
소설집을 내주신 문지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중지한 원고를 꺼내보아야겠다.
2017년 2월
박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