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연주의자, 철학자. 이 수필집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지만 미국에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이후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 작가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구적인 자연보호 실천가로 추앙받고 있다.
1837년, 뉴욕의 캐츠킬산맥 밑자락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존 버로스는 해마다 봄이 되면 돌아오는 새들과 농장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구리라든가 호박벌 같은 야생동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당시 온 가족의 주일 행사였던 교회에 가는 대신 들판과 산을 헤매다니고 냇가에서 헤엄치며 놀았다.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시골에 존재하는 ‘미물’들에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어린 시절 “숲속을 거니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종교의식이었으며, 냇가에서 멱을 감을 때마다 안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1860년 당시 새롭게 출간된 「애틀랜틱 먼슬리」지에 에세이를 발표하며 등단, 1871년 첫 번째 수필집 『연영초』를 발표한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 산자락에 조그만 오두막을 지어 평생 그곳에서 살며 셀러리와 베리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면서 글쓰기를 이어간다. 이후 30년 동안 오두막은 충실한 독자들과 조류학자 프랭크 채프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기업가 헨리 포드 등 각계각층의 저명한 친구들을 끌어모아 땅과 야생생물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집 바깥의 세계에 대한 신비로움을 불어넣는 명소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환경보호운동을 위한 윤리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03년에는 「애틀랜틱 먼슬리」지에 “진짜와 가짜 자연사”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 대대적인 “자연 사기꾼 논쟁”을 촉발하며 자연사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운동을 이끌어내었다. 야생동물의 생태에 작가 자신의 환상을 심어 넣었으면서도 마치 자연사의 일부인 것처럼 표현하는 작가들에게 “숲의 옐로우 저널리즘”이라며 비난을 퍼부은 것이었다. 이 논란은 4년간 지속되었다.
주변의 땅과 하늘에서 흔히 보는 새와 꽃, 동물, 산골 풍경에 대한 관찰을 기록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에세이의 주제는 종교, 철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우주의 기쁨,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 그것이 나의 종교”였던 문필가이자 농부, 자연주의자이자 추상적인 사상가, 은둔자이자 사교계의 명사였던 그는 1921년 자연으로 돌아갔다. 현재 미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여러 초·중·고등학교가 있으며, 그의 정신을 기리고자 존버로스협회가 설립되었다. 이 협회는 존 버로스의 오두막을 보호구역으로 유지하며 매해 자연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를 선정 “존 버로스 상”을 수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