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하여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서 일했다. 건국대학교에서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후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로 옮겨 체육교사.스포츠전문인의 양성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학생부학장, 배구클럽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한국스포츠교육학회 및 한국교원교육학회 부회장, 한국교육신문 및 한국대학신문 논설위원, 독서신문 책과삶 에디터 멘토로 봉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가지 않은 길 1, 2, 3』, 『코칭이란 무엇인가』, 『인문적 체육교육과 하나로 수업』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학교를 개선하는 교사』, 『배거 밴스의 전설』, 『존 우든의 부드러운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 등이 있다.
조약돌과 조가비
초등학생 시절, 1970년대 초반에 제일 못하고, 또 그래서 가장 하기 싫었던 것 하나가 있었습니다. 짧은 글짓기였습니다. 이백 자 원고지 몇 장을 채우는 글쓰기 작업이었습니다. 3, 4학년 때에는 두 장 정도로 국어시간에 간간히 했었고, 5, 6학년 때에는 1학기에 한 번 정도씩 여섯 장짜리로 글짓기 숙제를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읽기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글쓰기도 그리 잘 하지 못하던 저는, 이 글짓기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았습니다.
운동하며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했던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사정은 그리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학급문고 책읽기가 의무적으로 진행되어 국내외 단편소설집을 읽는 것은 약간의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불편하고 피하고만 싶은 고역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글쓰기는 좀 더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작업으로 진화하면서 저에게는 더욱 더 곤혹스러운 중노동이 되었습니다.
이 사태는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그리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글쓰기보다는 몸쓰기를 더 중요시하는 체육과에 입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공수업은 문제없었습니다. 글쓰기가 그리 강조되지 않았으니까요. 행복했습니다. 다만, 교양수업과 교직수업이 문제였습니다. 대학이다 보니 리포트 작성과 논술식 시험이 많았습니다. 체육과 학생들이 바닥을 깔아준 덕분에 타 학과 학생들은 손쉽게 높은 학점을 낚아채갔습니다.
그 주된 원인은 결국, 글쓰기가 제대로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글쓰기는 그냥 잘 될 수 없었습니다. 책읽기와 생각하기와 경험하기가 반드시 동반되어야만 하는 복합 활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체육과 학생에게는 달랑 경험하기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글 잘 못쓰는 것에 대하여 그리 개의치 않은 듯 했습니다. 다른 과 학생들에 비해서 몸을 잘 쓰고, 또 체육과는 그것이 최고로 중요한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라고 해야 하나, 저주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는 교직수업과 교양수업을 들으면서 글짓기에 대한 새로운 동경심이 떠오르게 됩니다. 학년이 갈수록 제대로 쓰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강하게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직접적 이유는 몇몇 교수님들의 글들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의 멋짐(나중에는 아름다움)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비유가 허용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마치 페로몬의 강력한 끌림으로 맹목적인 이성애를 느끼게 되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감생심이었습니다. 문학적 자질도 전문적 지식도 바닥인 저로서는 감히 들어설 수 없는 접근금지 영역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사정이 달라졌겠습니까, 그 사람이 그 사람인데요? 박사학위 받고 3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글쓰기 역량과 수준은 여전히 대학교 학부 시절의 그 모양 그 꼴입니다.
아무튼, 대학 이후 제게 있어서 글짓기는 가장 잘 하고 싶은 것들(선생노릇, 아비역할, 가장의무 등)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실망스럽게도 학술세계에서의 글짓기는 제가 가장 잘 하고 싶은 종류의 글짓기가 아니었습니다. 교수로서 학술세계에서 인정받는 글쓰기는 “논문”이라는 오랜 전통을 지닌 형식성이 매우 강한 글쓰기였습니다. 학계에서 조금이라도 성공하려면(인정받는 교수가 되려면) 이 기술에 정통해서 능수능란해져야만 했습니다.
긴 스토리를 축약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어찌어찌해서 필요한 글 기술을 습득하여 (실력보다는) 하늘의 도움과 약간의 운으로 현재의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논문식 글쓰기가 힘에 버겁지만, 또 어찌어찌 필요로 하는 만큼은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로망은 언제나 다른 종류의 글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틈틈이 그것을 실천해왔습니다. 비록 제게 동경의 대상이 된 선생님들의 수준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런 모양으로 그런 수준으로 저의 글짓기를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엉금엉금 느릿느릿 말입니다.
제가 희망하는 글쓰기는 “에세이”입니다. 수필이라고 불리는 글쓰기 형식 말입니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그러면서도 이성을 벗어나지 않으며 설득력을 지닌 글쓰기입니다. 딱딱하지 않고 전문적이지 않으면서도, 다루는 주제에 대한 비록 작더라도 새로운 성찰을 가능토록 해주는 글짓기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쉬운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깊은 깨달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쉽지만, 깊은 글말입니다.
이런 글은 학술세계에서는 가치를 쳐주지 않습니다. 폐지 값에도 못 미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글을 잘 쓰고 싶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논문으로서 체육 전반과 스포츠교육 분야에 새로운 전문지식을 생산해내는 것만큼이나 에세이식 글도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체육을 공부하는 사람, 그리고 스포츠교육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체육학자로서 스포츠교육자로서 다양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들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 생각들은 대부분 학술 논문으로 적힐 수준의 큰 이슈나 중요한 주제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생각의 깊이도 깊지 않습니다. 최신의 복잡한 관련 연구문헌들을 바탕으로 실증적 자료들을 모아서 체계적 분석과정을 거쳐서 합리적인 결과로서 내놓을 수준의 것들이 못됩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생각들이 틈틈이 떠오릅니다. 그리 길지도 그리 심오하지도 않은 수준에서 말입니다.
이 같은 생각들은 학술적 장소가 아니고 커피 모임이나 회의 후 회식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짧게 표현되고 전달될 뿐입니다. 아니면, 그냥 저 개인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윙윙거리며 회전 비행할 뿐이거나, 아예 조금 머물다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할 뿐입니다. 대게는 조금 더 주의와 관심을 받으며 글의 형태로 단정하게 그 모습을 갖추게 되는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그 기회는 때로는 누구로부터 주어지기도 하였고, 때로는 저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은 지난 십 여 년 동안 그 기회를 활용해서 주워 올린 글들을 그러모은 것입니다. 청탁받은 신문의 비정기 칼럼이나 월간 매거진의 고정 칼럼이 많습니다. 덜 딱딱하게 쓴 학술발표회 토론문도 있습니다. 순전히 그냥 쓰고 싶어서 쓴 수업시간의 소감이나 월별 글쓰기들이 있습니다.
스포츠 분야의 여러 이슈에 관련된 에세이나 칼럼 성격의 글쓰기는 지난 십여 년간 매우 활성화되었습니다. 스포츠 기자나 체육과 교수들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스포츠교육(또는 체육교육)에 대한 글들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운동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과 과정을 살펴보는 일은 글쓰기 전문가들의 주목을 전혀 끌지 못해왔습니다. 운동기능을 전수하는 일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치부되어왔습니다.
스포츠교육 전공자로서 저는 그것이 섭섭했고 그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체육이란, 또는 스포츠란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운동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모르던 또는 못하던 동작이나 게임을 알게 되고 수행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입니다. 이 과정은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라서 모두가 당연시들 하면서 관심을 두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걷기나 숨쉬기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저로서는 스포츠교육(그리고 그와 관련된 체육과 삶)의 여러 측면들을 여러 차원에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체육 전공자와 일반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일에는 학술논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에세이라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글쓰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에세이식 글쓰기는 제가 잘 하고 싶은 일과 제가 해야 되는 일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이 된 것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글들을 모아보니 역시나 오합지졸들에 불과한 병력임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타고난 문학적 재능도 일천하고 사사받은 글쓰기 교육도 전무한 체육선생이 쓴 글들이니 당연한 귀결입니다. 다만, 그 숫자가 적지 않음만이 두드러질 뿐입니다. 주제도 일관성이 없고 이것저것으로 너무 다양합니다. 그나마 대여섯 가지 정도로 묶어서 모아 낼 수 있어서 다행일 뿐입니다.
작품 몇 편만으로도 영원히 기억되는 불세출의 천재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먹이사슬의 최고 포식자는 자식을 한두 마리만 낳을 뿐이죠. 평범 이하인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물고기가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수천, 수만의 알들을 풀어놓듯이, 고작 몇 편의 글들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대량 살포의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여기 선별된 글들은 그나마 알을 업어 키우는 물자라의 등에 업혀진 운 좋은 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최고 수필가 중의 한 분으로 피천득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분께서 유일하게 펴내신 수필집 의 서문이 떠오릅니다. 비록 고인이 되신지 오래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단과대학의 선배 교수님이셨으니, 선생님께서 흔쾌히 양해해주실 것으로 믿으며 여기 길게 옮겨 봅니다.
산호와 진주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다 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들을 줍는다. 주웠다가도 헤뜨려 버릴 것들,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
내가 찾아서 내가 주워 모은 것들이기에, 때로는 가엾은 생각이 나고 때로는 고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 예쁘지 않은 아기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주듯이, 나는 나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산호와 진주”라 부르련다.
이 책을 펴내는 제 심정도 그대로입니다. 지난 십 년간 찾은 칠십 여개의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여기에 모아 봅니다. 혹시나 독자 여러분에게는 산호와 진주로 여겨질 만한 것 한두 개 정도는 발견하실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해봅니다. 정년까지는 앞으로 조금 모자라는 십 년. 저는 이제 다시 체육과 스포츠교육의 해변가로 나가 저만의 소원들을 조금 더 주워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운이 닿는다면, 그 때에는 조금 더 고운 빛을 발하는 것들로 진열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