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간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했으며, 철학적 사유를 대중과 나누기 위한 시민 강좌 및 제주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교양철학』(공저), 『철학으로 세상 읽기』, 『제주도 민간신앙의 구조와 변용』(공저), 『한국인의 생명관과 배아복제윤리』(공저), 『한국인의 죽음과 생명윤리』(공저), 『제주여성의 삶과 공간』(공저), 『제주도 신당 이야기』, 『세상은 왜?-세상을 보는 열 가지 철학적 주제』 등이 있다.
필자는 제주 출생이 아니다. 부산에서 성장한 필자는 1982년 겨울, 제주도와 인연을 맺었다. 부산 도심에서 자랐으면서도 도시의 번잡함과 불화했던 필자에게 제주도는 낭만의 땅이었다. 한 발치만 나서면 천연의 숲이 있고 바다가 있는 제주의 풍광, 고개를 돌리면 어디서나 바라다보이는 한라산, 더욱이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듯 위엄이 있으면서도 푸근한 품새가 느껴지는 한라산 자락은 그 품에서 삶을 꾸리고 싶다는 꿈을 꾸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막상 일상에서 낯선 가치 감각, 낯선 감정과 낯선 행동양식을 마주하는 일은 때로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그것은 제주어보다 더 낯설었다. 또 그것은 육지부의 다른 지역문화를 접했을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이질감이었고 문화적 충격이었다. 무엇일까? 나 스스로 이방인처럼 느끼게 하는 이런 이질감의 뿌리는 무엇일까?
제주문화의 특이성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저술과 논문들을 게걸스레 읽어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나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즈음 우연히 만나게 된 신당이 너무 흥미로웠던 필자는 다른 신당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마을 저 마을 신당들과 신앙민을 만나면서 나의 궁금증은 보다 선명한 과제로 다가왔다. 그것은 제주문화를 형성해 온 제주의 사회심리, 달리 말하면 제주인의 심리적 하부구조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사회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겠으나, 우선적으로 제주도에서 전승되어 오는 신앙을 연구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한 사회의 지배적인 신앙은 지역의 정신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통로라는 점이 연구 방향을 결정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었다.
시대 현실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고자 한 철학도로서 필자는 ‘특정한 문화의 구조가 특정한 정신의 구조 및 인간 활동에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늘 지니고 있었다. 이 문제의식이 제주문화를 경험하면서 구체적 현실과의 접점을 만들어낸 셈이다.
돌이켜보면, 신당을 찾아다니고, 마을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던 시간들, 사람들과 더불어 신당기행을 하던 시간들은 ‘전승이 말 걸어오는 것’을 듣는 시간이었다. 또한 신당에 두껍게 내려앉은 역사적 시간의 갈피들을 유영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