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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오숙은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5년, 대한민국 제주도

최근작
2025년 11월 <깨어있는 자본주의>

오숙은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에서 일한 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친절한 불안 상담소』(조슈아 플래처·딘 스탓), 『식물의 힘』(스티븐 리츠), 『정치철학』(스티븐 스미스), 『세상과 나 사이』(타네하시 코츠), 『공감 연습』, 『리커버링』(이상 레슬리 제이미슨), 『등대지기들』(에마 스토넥스), 『거기 눈을 심어라』(M. 리오나 고댕), 『숄』(신시아 오직), 『자유』(레아 이피), 『문명과 전쟁』(아자 가트, 공역), 『유럽 문화사 1~5』(도널드 서순, 공역) 등이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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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2010년 2월  더보기

정말이지, 첨단을 뽐내는 이미지에서 빠지지 않는 컴퓨터 그래픽이 본질적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선원근법을 벗어나지 못했다니, 우주선 마젤란 호가 찍은 금성의 대기사진을 보면서 터너의 낭만주의적 관점을 생각한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해부학 도해와 각종 분자모델에도 저마다 무슨 미술 양식처럼 시대적인 특징이 있다니 솔깃하지 않은가.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패턴 인식에 대한 ‘구조적 직관’을 형성해왔다고? 그렇다면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서 쉽게 토끼, 호랑이, 고래 같은 동물 모양을 발견하는 것이 단지 어린 마음의 상상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며, 벽지 위에서 의미 없이 반복되는 넝쿨무늬 속에서 소름끼치게 웃는 마녀나 뿔 달린 괴물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단지 심리상태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직관 속에 포함되지 않아서, 우리가 감각할 수단이 없어서, 우리 종이 진화시켜온 눈의 특성과 한계 때문에, 우리가 그 안에 존재하지만 ‘보지’ 못하는 수많은 차원들은 또 어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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